기울어진 노동시장에 함께 기우는 대한민국

[아웃소상타임스 이윤희 기자] 2030 청년층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유흥 중에는 '밸런스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고를 수 없는 두 가지 상황을 제시하고 둘 중 어떤 선택지가 더 나은지 선택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당장 천만원 무조건 받기 VS 50% 확률로 1억 받기처럼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떤 것이 더 이득인지, 나에게 어떤 상황이 더 맞는지 고민이 필요한 질문에 답을 내놓는 방식이다.
질문을 받은 응답자는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지가 나에게 더 적합한지 고민을 해야하다보니 각자의 취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두 선택지는 이득이 있으면 반드시 손해도 있는 선택지로 구성돼 양쪽 질문간 밸런스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게임 이름도 밸런스게임이라 불린다. 만약 두 선택지간 밸런스가 맞지 않아 어느 누구나 한쪽의 선택지를 정한다면 이를 두고 '밸붕'(밸런스 붕괴, 밸런스가 무너진 것을 뜻하는 말)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나라 노동시장 구조는 마치 '밸붕' 상태인 밸런스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것과 같아보인다. 이미 너무 곪아버린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르는 이중구조 속에서 구직을 해야하는 이들은 기회득실을 따져 보다 자신에게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반드시 한가지 선택지를 골라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선택한 선택지가 아니라면 다른 선택지를 선택하는 것이 '차선'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 차선으로 여겨진다.
주관식 답은 커녕 다지선다인 구조도 아니고 양자택일인 상황에서 그마저도 다른 한 쪽의 선택을 하면 바보가 되는 상황이다.
돈도 잘벌고 연차나 휴가도 좋은 대기업, 고용안정성이 높고 휴일과 각종 수당이 보장된 정규직을 고를 것인지 임금은 낮은데 일은 많고 연차나 휴가도 쉽게 쓸 수 없는 중소기업 근로자나 비정규직이 될 것인지 말이다.
이미 기울어진 노동시장에서 대다수 구직자는 대기업과 정규직에만 쏠릴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경력을 쌓아 더 나은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한데 일부는 자신이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선택지를 구직자가 외면한다고 해서 '배가 불렀다'거나 '주제를 모른다'고 비난하기 바쁘다.
그런 이들에게 한 가지 밸런스 게임을 제안하고 싶다. 당신이라면, 주 5일 근무하고 1년동안 1억 받기 VS 주 7일 투잡뛰면서 1년동안 4천만원 벌기 중 선택하라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고용노동부가 지난 6월까지 비정규직 임금차별 문제로 시정명령을 받은 47개소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동위원회·법원의 차별 시정명령에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기간제 근로자 등의 임금을 여전히 차별하고 있는 사업장이 17개소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은 명절휴가비나 복지포인트를 제공하지만 비정규직에게는 제공하지 않은 것이나 육아 휴직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행위 등이다. 이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차이가 만연하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비정규직 자체가 일하고 싶을때 일할 수 있는 자유로운 근무 형태보다는 노동착취의 온상, 사회를 좀먹는 노동형태로 여겨진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는 다 말하기도 어렵다.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 임금 대비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각종 복리후생과 성과급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더 많이 일하지만 더 적게 버는 중소기업 근로자가 한 둘이 아니다. 식대부터 자기개발비용과 각종 포상금까지 시작부터 출발선이 다르다보니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가 10년 근속했을 때 모은 목돈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고 다시 중소기업 근로자는 더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 결과 대기업 정규직이 될 수 없다면 구직 자체를 포기하려는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고 10대 사이에서는 유튜브, 인플루언서 등 외에는 성공의 답이 없다는 인식도 만연해지고 있다. 이로인해 노동시장의 양극화, 중소기업의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 이로인한 경영 침체와 노동경직성 강화로 국가의 성장력은 갈수록 정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시장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제활동이 가능한 인구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밸런스가 붕괴된 선택지 안에서 응답자들은 좋은 조건의 선택지에 도전하거나 선택 자체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무너진 밸런스를 되찾기 위해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한다. 비정규직이 더 일하고 덜 벌고 언제 짤릴지 모르는 불안감에 떠는 고용형태가 아니라, 더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아울러 연공서열식 임금 체제를 정리하고 기득권으로 자리잡고 있는 일부 정규직 집단에 대한 고용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