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협약 위반 논쟁과 근로감독관의 역할 변화

[아웃소싱타임스 김민수 기자]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의 근로감독관은 여전히 집단적 노사관계 업무를 수행해 왔지만, 이 과정에서 ILO 협약 위반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어 왔다.
특히, 우리가 비준한 ILO 제81호 협약 제3조에 따르면 근로감독관의 주요 임무는 개별 근로자의 보호와 근로조건의 집행에 있다. 또한, 집단적 노사관계 업무가 근로감독관의 주요 직무를 방해하거나 그 권위와 공정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조항에 따라 근로감독관이 집단적 노사관계에 깊이 개입하는 것은 협약 위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지난 11월 18일 국회미래연구원이 발표한 '근로감독관에 관한 열 개의 질문' 자료는 근로감독관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분석하고 있다. 본지는 근로감독관에 대한 10개 질문을 시리즈로 다루며, 이번 호에서는 여덟 번째 질문인 '어떤 논쟁이 있었나?'에 대해 다룬다.
■ILO의 지적과 정부의 대응
2012년 ILO 전문가위원회는 한국에 대해 연례 보고서를 통해 근로감독관이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과 노동쟁의 예방 및 해결을 지침으로 제공하는 행위가 협약의 본래 취지를 벗어난다는 점을 지적했다.
ILO는 근로감독관의 주된 역할은 근로조건과 노동자의 권리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및 노동쟁의 예방과 해결 같은 추가 임무가 이러한 본래의 역할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근로감독관이 단체교섭 및 노동쟁의와 관련된 지침을 제공함으로써 불법 행위를 예방하고 있다고 답변했으나, 노동조합 측에서는 행정 권한 남용에 대한 비판이 계속 제기되었다.
■노동위원회로의 이관 논의
한편, 집단적 노사관계 업무를 노동위원회로 이관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직 근로감독관들은 노사 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개입해 중재와 조정을 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실제로 1990년대 후반 노사 간 대규모 분쟁에서 근로감독관들이 초기에 개입해 사태를 원만히 해결한 경험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노동위원회로 업무가 이관되면 이미 노사 간 불신이 깊어진 상태에서 개입하게 되어 효과적인 조정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노동위원회는 인력과 조직 규모의 한계로 인해 이러한 조정 업무를 충분히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전국에 12개의 노동위원회와 370~380명의 인력만으로는 조정 업무의 전면적 수행이 힘들다고 평가된다.
■근로감독관의 현실적 역할과 정부의 후견주의
오랫동안 국회에서 노동정책을 담당해 온 관계자는 노사 분쟁을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한국 노사관계의 특성상 노사 간 불신이 깊고, 협상 과정에서 강력한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국가의 후견주의적 역할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위원회로의 이관이 심판 기능만을 수행하게 되어 결국 노사 간 불신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화가 진행되며 정보 경찰보다 노동관계법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근로감독관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미래 과제와 근로감독관의 역할 재정립
근로감독관의 집단적 노사관계 업무는 노사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이러한 역할이 때로는 노동 통제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일부 정부는 근로감독관을 활용해 노동조합 활동을 제한하거나 강경하게 대응하는 정책을 펼쳤다는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근로감독관의 역할을 노동자 보호와 노사 간 협력 촉진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맞게 재정립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위원회와의 협업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갈등 조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노사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