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레너드 라루’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장(船長)
[전대길 CEO칼럼] ‘레너드 라루’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장(船長)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4.06.2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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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흥남 철수 작전에 대하여
전  대  길
(주)동양EMS사장,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6·25전쟁 때 흥남 철수 작전(1950년 12월 15일~12월 24일)은 미 10군단장인 ‘드워드 알몬드’ 장군에 의해 수송선 135척과 민간 선박과 군함 등 20여 척이 군인과 피난민들과 전쟁 물자를 싣고 함경도 흥남 부두에서 거제도와 부산으로 운송한 군사작전이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메러디스 빅토리호

흥남 철수 작전이 끝나갈 즈음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군수용 물자를 가득 채우고 군남 부두 출항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이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발을 동동 구르며 살려달라는 피난민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의 광경이 ‘레너드 라루(Leonard P. Larue/1914~2001, 1955년 12월 상훈: 금성 을지무공훈장)’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장의 시야(視野)에 띄었다. 이때 레너드 라루 선장은 고민에 빠졌다.

레너드 라루(Leonard P. Larue) 선장(船長)  
레너드 라루(Leonard P. Larue) 선장(船長)  

그의 주임무(主任務)는 전쟁 물자만을 싣고 흥남 부두를 철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임무를 수행하면 그 많은 피란민이 죽임을 당할 것이 자명했다. 최종적으로 그가 내린 결정은 피란민들을 구출하기로 작정하고 모두 승선하도록 명령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배에 실었던 군수물자 250,000 ton을 바다에 버리고 정원 60명의 230배가 넘는 14,000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거제도 장승포항으로 향했다. 실려 있던 전쟁 물자를 버리고 피란민을 탑승시키는 데는 16시간이 소요되었다. 

중공군이 흥남으로 공격해 오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사흘간의 목숨을 건 항해 끝에 거제도까지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수송 작전을 수행했다. 

거제도에 도착했을 때는 홍남을 떠날 때보다 5명이 늘어나 있었다. 사흘간의 항해 속에서 아이 5명이 탄생한 것이다. 미군은 이때 태어난 신생아들에게 김치 1, 김치 2, 김치 3. 김치 4, 김치 5로 명명했다. 전장에서 희망이 피어난 것이다.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무사히 거제도에 도착한 때가 X-Mas 즈음이라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기적의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흥남 철수 작전은 세계 전쟁사의 가장 인도주의적인 작전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어느 정치인 부모도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승선했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레너드 라루(Leonard P. Larue) 선장은 전역 후 수사(修士)로 봉직(奉職)하며 은둔(隱遁) 생활을 했다”고 해군 UDT 부대를 창설했던 필자의 의제(義弟)인 전상중 (예)해군 제독(提督)이 일러준다. 

6·25전쟁 74주년을 맞아 ‘레너드 라루(Leonard P. Larue)’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장 이야기를 초·중학생용 교과서에 실린다면 참으로 좋겠다. 

우리 한국인은 ‘레너드 라루’ 선장(船長)을 영원히 기억하고 감사(感謝) 기도(祈禱)를 드리자.

전  대  길
(주)동양EMS사장,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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